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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부정공>돈서재기(敦舒齋記)휘시술(諱時述)
敦舒齋記 黃田九土里之原有馬鬣封焉故進士月川趙公之幽宅也有閣翼然新起掩暎於松栢之間即趙氏子孫春秋會享之所也趙公當丙子時倡義勤王道聞南漢圍解痛哭而還歛跡其自靖其名聲足以感人於千載之下而世數漸遠廟貌己撒其後昆思其賢祖之德鳩財募工爲建墓閣而祭之於是鄉里後進及行路過往之人皆能誦趙公月川之事而莫不肅然起敬慨然生景慕之心夫此閣之建始於不忘其祖而終能彰先徽敦族誼勵鄉俗行一事而三美具焉元人虞集著張氏孝思亭記云墓而昭穆即墓亭也趙氏此擧深得古人之意豈不美哉昔吾從氏晦隱公來莅玆府月川之孫柱錫珍錫方謀竪碣請公書而刻之今余之來又適直其墓閣之役趙氏兄弟皆皤然己老而猶矻矻靡懈於奉先之節詩云夙興夜寐無忝爾所生其此之謂歟余既慕月川公之高義又續家族兄舊誼書此以歸之 知府清風 金允植 謹記 돈서재기(敦舒齋記) 황전 구토리 마을 언덕 말갈기에 있는 가성(佳城)은 고 진사 월천(月川) 조공의 유택(幽宅)이요 높이 솟은 재각이 새로 일어나 소나무와 잣나무 사이로 비추는 곳은 곧 조 씨 자손이 춘추로 모아 제사를 지내는 처소이다. 조공이 병자호란 때에 의리를 주창하고 왕사(王事)에 힘쓰다가 길에서 남한산성의 화맹을 듣고는 통곡하고 돌아와 자취를 감추고 스스로 그 몸을 개결하게 하였으니 그 명성은 족히 천 년 뒤의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다. 세월이 오래되어 재각이 훼철되매 그 후손들이 그 현조의 덕을 사모하여 재물을 모으고 공장을 모집하여 새로 묘각을 세우고 향사하니 이에 향리의 후진 및 길가는 사람들이 다 조공 월천의 사행을 외고 숙연히 경건한 마음을 일으켜 개연히 추모한 뜻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무릇 이 재각의 건립은 그 뜻이 선조를 추모한 것이요, 종내 선조의 아름다운 행적을 밝히고 족의를 두텁게 하며 풍속을 순화하게 되었으니, 한 일을 하여 세 가지 아름다움을 갖추었다. 원인우집(元人虞集)이 저술한 장씨효사정기(張氏孝思亭記)에 보면 묘소의 소목(昭穆)은 곧 묘정(墓亭)이라 하였으니 조 씨의 이 거사는 옛 사람의 뜻을 깊이 터득한 것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옛적에 우리 종 씨(從氏) 회은공(晦隱公)이 이 고을의 지부로 왔을 때에 월천공의 손자 주석(柱錫)과 진석(珍錫)이 장차 묘갈을 세울 계획을 하면서 공에게 청하여 이를 새겼고 이제 내가 와서 마침 묘각의 역사를 참견하게 되었다. 조씨 형제가 이미 귀밑이 희끗희끗하게 늙었으나 쉬지 않고 노력하여 봉선의 도리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시경)에서 이른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네 태어난 근본을 욕되게 하지 말라.』 한 것이 이를 이름이니, 내가 이미 월천공의 높은 행의를 사모하고 또 내 집 족형 구의를 이어 이를 써서 돌려보낸다. 지부 청풍 김윤식 삼가 기록함(知府 清風 金允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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